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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부, 때(時)와 몸이 하나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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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근∥(사)한국효도회전남지부 회장

한 사람의 열정이 남긴 한 도막의 글과 체취와 만나게 되는 것은 한편은 슬프고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구 전체를 동시에 읽는 컴퓨터 문명 속에 살면서, ‘공자왈 맹자왈’이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을 준단 말인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생판 다른데, 그들의 낡은 생각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가르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질문에 답한다. 연이 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은 그 줄이 땅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줄이 풀어지거나 끊어지면 연은 곧장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들의 생각이 수천 년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은 까닭은 그 뿌리가 대지에 든든히 박혀 있기 때문이요, 근본을 붙잡은 그들의 생각을 우리가 잃는다면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의 문명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다. 

시절이 급박하고 어지러울수록 더욱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천박한 지식과 모자라는 생각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성현의 글을 읽고 생각하고 암송하며 행동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그것의 뿌리(根本)가 있다.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가, 한 나라의 뿌리는 백성이 뿌리다. 그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따라서 있을 수 없는 것을 가리켜 ‘근본’이라고 한다.  

경(徑)은 길이다. 인간의 역사가 언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동안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이것이 사람 사는 길이라고 가르친 바가 없지 않아 있고, 그것들을 글로 적었을 때 ‘경(經)’이라고 부른다.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어야 하기 때문에 부는 것이 아니라 불 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부는 것이고 천둥이 치는 것은 천둥을 쳐야 하기 때문에 치는 것이 아니라 칠 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치는 것이요 또 친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움직일 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움직이는 것이고 구하려고 소원을 하던 것도 구해질 만한 여건이 되었을 때에 구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만사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돌려지는 것이며 그렇게 감응(感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를 이끌어 보겠다고 말들을 하더라도 세상을 이끌만한 이치가 없을 때에는 헛된 메아리요 그림자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고 무엇을 조성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이끌고 뜻을 따르며 양보하고 힘을 합할 때에 발생하는 인화력(人和力)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화력이 있는 곳에서 내 자리와 발판이 생겨나며 내 발판에서 힘이 생기고 시기가 생기며 구함이 생기고 구분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일에서는 이와 같은 이치와 명분(名分)과 시기(時期)가 있을 때에 그 결실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아감의 진퇴(進退)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때에 나아감에 알맞은 때인가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아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며 일에서 진퇴의 구분을 얻을 수가 있는 요령이 된다.

낮과 밤이 이루어지고 반복되는 것을 보고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낮에는 무엇을 하고 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깨닫고, 나무(자연의 대표) 등이 자라고 꽃 피고, 열매를 맺으며, 겨울에 씨를 저장하여 다시 봄에 싹이 트는 순환을 보고 사람도 그 변화에 맞추어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공부다.

이러한 천지자연의 변화 질서를 성현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익히게 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글자로 만든 것이 학문이고 공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잠에서 일어나면 먼저 하늘을 보고 오늘의 날씨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아이들도 언제나 아이로 살 수 없다는 것, 성인들이 나이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배우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봄에 씨앗을 뿌릴 때에도 시기에 늦거나 빠르면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없다는, 즉 때(나이)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며, 봄에 씨앗을 뿌렸다고 해서 풍성한 수확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수시로 돌보아야 한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농부가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하늘과 땅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즉 철에 따라 바뀌는 자연의 순서를 배우고 익혀 바야흐로 그 ‘철’이 몸과 하나로 되는 것을 ‘철든다’고 한다.

글공부란 문자를 많이 외우는 데 있지 않고 자연의 엄연한 순서인 ‘철’과 하나로 되는 데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또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길은 경계(境界)다. 세상에 길이 아닌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이 있는 것이다. 길은 그것을 따라서 가도록 되어 있다. ‘사람의 길은 사람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라는 성현들은 외침과 삶이 들리고 있지 않는가? 성현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서 나서 보자.


호남교육신문 http://www.ihop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