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풍경이 숨쉬는 창(161)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옵니다. 진눈깨비에 강풍이 합세한 날씨가 강변길에 족쇄를 채웁니다. 그냥 작업실에 앉아 돋보기로 바깥 동정을 살핍니다. 산수유 꽃가지에 새들이 엄습합니다. 직박구리들입니다. 마당에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쓸어 갔는데 또 방문했습니다. 길고양이까지 지나가고도 찾지 못한 게 있을까요?
꽃샘바람이 기어 변속 때마다 찾아오는 얌전한 새들입니다. 햇볕이 맵거나 따가울 땐 소란스럽다가도 주인이 혼자라는 걸 눈치채면 얌전히 땅을 헤집습니다. 그러다가 점프하여 감나무의 덧난 상처를 부리로 건드리는데요. 어쩌나요? 내 살갗이 으스스 시려 오는 걸. 마침 눈송이가 상처를 붕대처럼 감아주니 이런 다행이 없습니다.
수선화가 카톡과 함께 꽃 세상을 활짝 열었습니다. 샛노란 모자에 햇빛을 눌러 담고 손짓합니다. 꽃 이파리들이 한눈 판다며 바람에게 따귀를 몇 대 얻어맞습니다. 꽃숨 터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요. 수선화 곁에 바짝 다가가 엿듣습니다. '춥다, 추워!'하며 오들거립니다. 오늘 밤에는 검불을 덮어 줘야겠네요. 독감 바이러스 차단제로 이만한 게 없습니다.
반칠환 시인의 '봄'을 소개합니다.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들이 무엇일까요? 찾아보십시오.
※ 정영희 시인이 본지 칼럼니스트로 다시 합류했습니다. 과거 본지 칼럼을 통해 시인의 언어로 단어를 한자 한자 조탁하듯 명문을 선보여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귀중한 재능을 낭비하지 마시라'는 본지의 제안에 '중늙은이가 무슨 할말이 더 있겠느냐'며 고사했지만 '한 달에 한 번, 아니 반년에 한 번, 그도 아니면 일년에 한 번씩만 글을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간곡히, 간곡히 호소한 끝에 보내주신 글이 '파도리에서'입니다.
과거 본지에 '정영희의 풍경이 숨쉬는 창'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셨는데, 2006년 8월 26일 처음 선보인 '시대가 끼있는 선생님을 부른다'부터 시작해 2021년 1월12일 ‘오늘의 날씨’를 끝으로 장장 15년간 지속해온 연재가 중단돼 아쉬웠습니다. '파도리에서'가 161번째 칼럼입니다. 본지와 역사를 함께 해 주신 정영희 시인에게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독자 여러분들이 반칠환 시인의 시 '봄'을 일부러는 찾아 읽지 않으실 것 같아 제가 검색해서 올립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싹, 꽃, 김을 합해 이른 바 '봄'인 것 같습니다. [김두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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